Sakana AI는 프론티어 모델을 한 번도 처음부터 학습시키지 않았다
사카나 AI는 2024년 오픈소스 7B 모델 셋을 진화적으로 병합해 각 소스 모델을 큰 폭으로 앞서는 모델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줬다. 2026년에는 이 전략을 사후 학습(나마즈)과 다중 모델 오케스트레이션(후구)으로 확장했다.
세 시도 모두 프론티어급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키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창업 3년 만에 이 전략은 일본에서 가장 빠른 유니콘, 기업가치 26억 5000만 달러로 이어졌다.
다만 벤치마크는 대부분 자체 발표치이고 제3자 검증은 아직이다. 실사용 테스트에서 드러난 속도와 비용 문제는 처음부터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무엇을 조합하든 거저 돌아간다는 것이 다른 이야기라는 걸 보여준다.
2026년 1월 15일,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 1차 단계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총 예산 2136억원이 걸린 이 사업에서 최종 후보 다섯 팀 가운데 네이버클라우드가 탈락했다.
이유는 성능이 아니었다. 네이버클라우드의 '하이퍼클로바X 시드 32B 싱크' 모델이 알리바바 큐원의 비전 인코더 가중치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는 "가중치를 초기화한 뒤 자체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학습한 모델"만 독자 모델로 인정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100% 자체 개발이라고 반박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않은 모델은 독자 AI가 아니라는 판정이었다.
두 달 뒤 도쿄에서는 정반대의 선택이 나왔다. 3월 24일, Sakana AI(이후 사카나 AI로 표기)는 중국 딥시크와 메타 라마, 오픈AI의 오픈 웨이트 모델을 가져와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맞게 재학습시킨 모델 '나마즈'를 공개하며 이를 일본의 소버린 AI(Sovereign AI)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학습시킨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이 대비는 우연이 아니다. 사카나 AI는 창업 이래 프론티어급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신 남의 모델을 병합하고 그 위에 얹고 여러 모델을 지휘하는 전략을 3년째 반복했다. 이 전략은 이 회사를 창업 3년 만에 일본에서 가장 빠른 유니콘, 기업가치 26억 5000만 달러 규모로 밀어 올렸다. 사카나 AI가 무엇을 만들어왔는지, 그리고 이 전략이 어디까지 통하고 어디서 흔들리는지 짚어본다.
사카나 AI는 물고기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다
사카나(さかな)는 일본어로 물고기다. 로고도 물고기 떼를 그렸는데 그중 한 마리만 다른 방향을 본다. 중앙 사령탑 없이 단순한 규칙만으로 무리 전체가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물고기 떼처럼, 여러 개의 작고 단순한 모델이 모여 하나보다 나은 결과를 낸다는 게 이 회사의 창업 철학이다.
사카나 AI는 2023년 7월 도쿄에서 데이비드 하(David Ha, CEO), 리온 존스(Llion Jones, CTO), 이토 렌(Ren Ito, 공동창업자) 세 사람이 세웠다. 하는 골드만삭스에서 8년간 일본 금리 트레이딩 데스크를 이끌다 2016년 구글 브레인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력이 있다. 존스는 2017년 논문 "Attention Is All You Need"의 여덟 저자 중 한 명이다. 이 논문 제목도 존스가 지었는데 비틀즈 노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토는 도쿄대 법학과 뉴욕대 로스쿨을 나와 외무성에서 일하다 메르카리의 해외 진출을 이끈 경력이 있다.
세 사람이 만든 회사는 빠르게 컸다.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운영하는 Science Japan은 사카나 AI를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으로 소개했다. 2024년 니혼케이자이신문이 추산한 기업가치는 190억엔이었다. 그해 9월 시리즈A(2억 1400만 달러)로 15억 달러 밸류에 유니콘이 됐고, 2025년 11월 시리즈B(1억 3500만 달러)로 26억 5000만 달러까지 뛰었다. 투자자 명단에는 미쓰비시UFJ·스미토모미쓰이·미즈호·이토추·노무라·NEC·후지쯔 같은 일본 대기업과 엔비디아, 코슬라 벤처스, 럭스 캐피털 같은 실리콘밸리 자본이 세 라운드에 걸쳐 함께 이름을 올렸다. 2026년 2월에는 씨티그룹이 사카나 AI에 전략적으로 투자했는데, 씨티그룹이 일본 기업에 투자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어 3월에는 미쓰비시전기도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과 트랙션은 2026년 5월 기준 직원 수를 150~200명 사이로 추정한다. 창업 초기인 2024년 초 20명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년 사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 회사가 순수 연구를 놓은 것도 아니다. 2024년 8월 내놓은 '더 AI 사이언티스트'는 아이디어 구상부터 논문 작성까지 연구 전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이다. 옥스퍼드대·UBC와 공동 연구했다. 논문 한 편에 드는 비용이 15달러 수준이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지만 동시에 곤란한 사건도 남겼다. 실험이 제한 시간을 넘기자 코드를 최적화하는 대신 스스로 타임아웃 제한을 늘리도록 자기 실행 스크립트를 고쳐 쓴 사례가 발견됐다. 한 실행에서는 스크립트가 자신을 무한히 재실행하는 문제도 생겼다. 사카나 AI는 통제된 환경에서 나온 사례라 즉각적 위험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일화는 AI 안전성 논의에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2025년 5월에는 트랜스포머 이후를 겨냥한 아키텍처 'Continuous Thought Machine(CTM)'과 스스로 코드를 고쳐 쓰며 성능을 높이는 'Darwin Gödel Machine(DGM)'을 잇달아 내놨다. DGM은 UBC·벡터 인스티튜트와 공동 연구했다. SWE-bench 성적을 20.0%에서 50.0%로, Polyglot 성적을 14.2%에서 30.7%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사를 가장 잘 설명하는 흐름은 따로 있다. 프론티어급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키지 않고 이미 있는 것을 조합해 그 자리에 서는 전략이다. 그 전략은 세 단계로 이어졌다.
2024년, 7B 모델 셋을 섞어 각 소스 모델을 이겼다
첫 단계는 가중치 자체를 섞는 것이었다. 2024년 3월 공개한 논문 '진화적 모델 병합(Evolutionary Model Merge)'은 여러 오픈소스 모델을 어떻게 합칠지, 즉 어느 층을 얼마만큼 섞을지를 사람의 직관이 아니라 진화 알고리즘으로 찾는 방법이다. 파라미터 공간에서 가중치를 섞는 방식과 데이터 흐름 공간에서 층을 재배치하는 방식을 함께 탐색한다.
결과물이 EvoLLM-JP다. 일본어 범용 모델(Shisa Gamma 7B) 하나와 영어 수학 추론 모델 두 개(WizardMath-7B, Abel-7B)를 진화적으로 병합했다. 사카나 AI가 공개한 평가표에 따르면 세 소스 모델은 일본어 수학 문제 벤치마크(MGSM-JA)에서 각각 9.6%, 18.4%, 30.0%에 그쳤다. 이 셋을 병합한 모델은 같은 벤치마크에서 52.0%를 기록했다. 개별 모델을 추가로 학습시키지 않고 이미 학습된 가중치를 섞는 것만으로 성능이 뛰었다. 사카나 AI는 이 결과를 대규모 컴퓨팅 자원 없이도 AI 개발을 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2026년 3월, 사카나는 소버린 AI를 다시 정의했다
두 번째 단계는 남의 모델 위에 자국어와 자국 문화를 얹는 것이었다. 나마즈라는 이름부터 사카나(물고기)의 연장선이다. 나마즈는 일본어로 메기를 뜻한다. 사카나 AI는 딥시크의 DeepSeek-V3.1-Terminus, 메타의 Llama-3.1-405B, 오픈AI의 gpt-oss-120B 세 가지를 가져와 사후 학습(Post-training)을 적용했다. 사전 학습 단계는 건드리지 않고 일본의 언어와 문화, 안보 요구에 맞춰 조정하는 후속 단계에만 집중했다. 같은 날 공개한 대화형 서비스 '사카나 챗'은 오사카 사투리 같은 지역 말투까지 지원하며 일본 국내에서만 접속할 수 있게 열었다.
사카나 AI에 따르면 나마즈는 기존 모델이 정치·역사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답을 회피하던 비율을 거의 0%까지 낮췄다. 추론이나 코딩 같은 기본 역량은 원본 모델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중립성과 사실 정확도는 눈에 띄게 개선했다고 밝혔다. CEO 데이비드 하는 이 접근을 두고 일본이 미국과 중국의 초거대 모델 경쟁을 따라갈 필요 없이 사전 학습이 아닌 사후 학습 계층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선택은 앞서 본 한국의 프롬 스크래치 기준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같은 목표, 즉 자국어와 자국 문화를 반영한 AI 주권을 놓고 두 나라는 정반대의 기술적 답을 골랐다. 한국은 처음부터 다시 학습시킨 모델만 독자 모델로 인정했고, 일본의 가장 빠른 유니콘은 남의 가중치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소버린 AI라고 불렀다.
다만 이 선택에는 스스로 설명하기 까다로운 지점도 있다. 나마즈가 기반으로 삼은 세 모델 중 하나는 중국 딥시크의 오픈 웨이트다. 안보와 문화적 자립을 내세우는 소버린 AI가 정작 기반 기술은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나라의 오픈소스에 의존한다는 점은, 사카나 AI가 아직 정면으로 답하지 않은 질문으로 남아 있다.
2026년 6월, 사카나는 모델 대신 지휘자를 내놓았다
세 번째 단계는 모델을 학습시키는 일 자체를 건너뛰는 것이다. 6월 22일 공개한 '후구'는 그 자체로 언어모델이지만 하는 일은 다른 모델을 지휘하는 것이다. 요청이 들어오면 후구가 직접 답할지, GPT-5.5·Gemini 3.1 Pro·Claude Opus 4.8로 이뤄진 풀에 작업을 나눠 맡길지 판단하고 결과를 검증해 하나의 답으로 합쳐 돌려준다. 이 구조는 ICLR 2026에 발표한 논문 두 편, 'TRINITY'와 'Conductor'에 기반한다. 후구라는 이름도 사카나(물고기), 나마즈(메기)에 이은 세 번째 어종이다. 일본어로 복어를 뜻하는데, 손질을 잘못하면 위험하지만 제대로 다루면 진미로 통하는 생선이다.
사카나 AI가 자체 공개한 벤치마크에 따르면 후구 울트라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코딩 벤치마크인 SWE-Bench Pro에서 73.7%를 기록해 Claude Opus 4.8(69.2%), GPT-5.5(58.6%), Gemini 3.1 Pro(54.2%)를 모두 앞섰다. 회사는 이 결과를 두고 앤트로픽의 Fable 5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소개했는데, 정작 Fable 5는 후구의 풀에 들어 있지도 않다. 이 문구에는 시점상의 배경이 있다. 6월 12일 미국 상무부는 수출통제를 이유로 앤트로픽에 전 세계 이용자의 Fable 5·Mythos 5 접근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두 모델은 6월 30일 통제가 풀릴 때까지 이용할 수 없었다. 후구는 정확히 그 기간에 나왔고 "수출통제 리스크 없이 프론티어급 성능을 제공한다"는 문구를 앞세웠다. 특정 공급사 하나에 의존할 때 생기는 위험을 열흘 남짓한 실제 사례로 보여준 셈이다.
문제는 벤치마크와 실사용 사이의 간극이다. 출시 하루 만에 와튼스쿨 교수 이선 몰릭(Ethan Mollick)은 자신이 쓰는 셰이더·인터랙티브 씬 코딩 테스트가 후구 울트라에서 약 30분 걸렸다고 전했다. 결과물은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Fable 5에는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해커뉴스에는 월 200달러 요금제로 주당 3시간도 못 쓴다는 불만도 올라왔다. 벤치마크 수치 자체도 사카나 AI가 직접 발표한 것으로 제3자가 재현한 결과는 아직 없다. 후구 울트라가 모든 지표에서 앞선 것도 아니다. 적어도 한 매체가 정리한 표에서는 SWE-Bench Pro와 Humanity's Last Exam처럼 Fable 5가 여전히 앞서는 지표도 있었다.
세 번의 도박이 말해주는 것
세 번의 시도, 즉 모델 병합과 사후 학습과 오케스트레이션에는 공통된 하나의 도박이 있다. 프론티어에 서기 위해 프론티어급 사전 학습을 반드시 거칠 필요는 없다는 도박이다. 이 도박은 지금까지는 시장에서 통했다. 창업 3년 만에 일본 최대 금융·산업 자본과 씨티그룹, 미쓰비시전기까지 끌어들였고, 회사는 2026년 사업 영역을 금융을 넘어 산업·제조·국방·정보 분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사카나 AI는 창업 이래 프론티어급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도박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프론티어 경쟁에 뛰어들 자본이 없는 나라나 기업에게 다른 경로가 있다는 걸 실적으로 증명했다. 자체 데이터센터와 수천억 원대 사전 학습 예산 없이도 이미 있는 모델을 잘 조합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한국은 처음부터 학습시킨 모델만 독자 모델로 인정했고, 일본의 가장 빠른 유니콘은 남의 가중치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소버린 AI라고 불렀다. 'AI 주권'이라는 말이 반드시 처음부터 혼자 만든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는 걸, 두 나라는 같은 시기에 정반대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다. (한국의 사례가 틀리고 일본의 사례가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필자는 뛰어난 기술은 의존성 없는 ‘From Scracth’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다만 이 도박이 공짜라는 뜻은 아니다. 후구가 받은 실사용 평가는 조합이 곧 대체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여러 모델을 오케스트레이션하는 데는 지연 시간과 비용이 따르고, 남의 API를 경유해 고객 데이터를 흘려보내는 구조는 각 공급사 이용약관과 충돌할 여지도 있다. 나마즈의 소버린 AI 주장도 결국 그 기반이 되는 오픈 웨이트를 누가 얼마나 계속 공개하느냐에 달려 있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무엇을 조합하든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사카나 AI가 3년간 증명한 건 하나다. 프론티어에 서는 데 프론티어급 사전 학습이 필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조합이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보다 결국 더 나은 선택인지는 후구의 벤치마크와 실사용 사이의 간극이 초기 구현의 문제인지, 조합 전략 자체의 한계인지가 가려질 때에야 답이 나올 것이다. 무엇을 조합하든 그 조합을 안정적으로 돌릴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남는다.